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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마가복음9장23절(막9:23) [예수어록133] 만약에 -마가복음9장23절(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9:23) 예! 그렇습니다. 만약 할 수 있으면 고쳐보라는 말에 발끈하시며 “ ‘만약에’라니, 믿으면 안 되는 일이 없소!.”하고 말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이다. 이 구절은 이 세상의 ‘승리주의, 성공주의’를 합리화 시켜주는 성경 구절로 딱 맞아 떨어진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기독교 승리 신앙’에 푹 빠져 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승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승리는 무엇인가.. 2024. 2. 15.
언제부터 - 마가복음9장21절(막9:21) [예수어록132] 언제부터 - 마가복음9장21절(막9: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때부터니이다.” (막9:21)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물으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랬소?” 그가 “어릴때부터입니다.” 지금 사람들 앞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아이의 병은 간질병 증상인데 아마도 선천성이어서 어릴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아들을 키워야 했던 부모는 평생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가족이 아니면 그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선천성 장애나 불치병은 개인의 책임도 부모의 책임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의 책임도 아니지만, 국가적 시스템으로 그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잘 사는 나라 ?선진국’일 것이다. .. 2024. 2. 14.
마가복음9장19절(막9:19) -믿음없는 세대 [예수어록131] 마가복음9장19절(막9:19) -믿음없는 세대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막9:19)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믿음이 적은 세대여! 내가 얼마나 더 그대들과 함께 있어야 온전히 믿겠소? 그 아이를 이리 데려오시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간질병을 치유하지 못한 제자들을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병이나 축귀를 하지 못하는 제자들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을 말한다. 놀랍게도 근본주의 소속의 어느 작은 교단에서 성경에 지구가 평평.. 2024. 2. 13.
변론(논쟁) -마가복음9장16절(막9:16) [예수어록130] 변론(논쟁) -마가복음9장16절(막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막9:16)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제자들에게 “무슨 일로 그렇게 다투는거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왜 그렇게 말이 많고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못난 집단으로 매도를 당하고 있을까?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많이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점점 더 말많은 집단이 되어간다. 원래 본질에서 벗어나면 말이 많아지고, 가짜가 더 요란한 법이다. 문제가 많은 교회일수록 시끄럽고, 이상한 이단일수록 지나칠 정도로 자신들을 변호하는 말이 장황하다. 반대로 신앙의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것이 그 마음을 채우기 때문에 말이 줄어든다. 본질이 빠지면.. 2024. 2. 12.
함부로 -마가복음9장13절(막9:13) [예수어록129] 함부로 -마가복음9장13절(막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막9:13)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들이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온 엘리야를 왜 함부로 대우하였는가 하면 몰라서다. 눈이 밝지 못해서 그를 알아보지 못해서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했는가? ‘아는 것(學)’이다. 사람 눈을 어둡게 하는 것은 무식(無識)이 아니라 유식(有識)이다. 학불학(學不學)이다. 사람은 날마다 먹고, 먹은 것을 소화시켜 없애야 살 수 있다. 이처럼 날마다 배우고, 배운 것을 소화시켜 없애야 눈이 밝아지는 법이다. 그런.. 2024. 2. 11.
엘리야와 인자 -마가복음9장12절(막9:12) [예수어록128] 엘리야와 인자 -마가복음9장12절(막9: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막9:12) 예! 그렇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오. 그리고 성경에 인자에 대해서도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말라기4:5-6절을 근거로 메시야가 오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온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왜 엘리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느냐? 라는 제자들의 질문이다. 엘리야는 초능력적인 승리의 사람이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내심 엘리야와 같은 ‘초능력’을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24. 2. 10.
본 사람들 -마가복음9장9절(막9:9) [예수어록127] 본 사람들 -마가복음9장9절(막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막9:9)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을 내려오며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었다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지금 산에서 본것을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나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미리’ 본 제자들은 그 황홀한 순간을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사건이 아직 일어나기 전이라 본 것이 알려지면 안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 것을 비밀로 하라고 단단히 이르신다. 본 것을 본대로 자세히 얘기해야 할 때가 있고, 아직은 그것을 말하지 않아야 할 때.. 2024. 2. 9.
볼 사람들 -마가복음9장1절(막9:1) [예수어록126] 볼 사람들 -마가복음9장1절(막9: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막9:1)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소”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엿세 후에, 그들 가운데 세 사람이 정말 그것을 보았다. 그들 눈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완전히 변했다. 예수님의 옷은 아무리 표백해도 더 하예질 수 없을 만큼 반짝반짝 빛났다. 베드로는 그 상황이 하도 황홀해서 여기에 집을 짓고 살자고 했을 정도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 2024. 2. 8.
인자 -마가복음8장38절(막8:38) [예수어록125] 인자 -마가복음8장38절(막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8:38) 예! 그렇습니다.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을 창피하게 여기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예수님께 창피하게 여김을 당할 것입니다. ‘인자(사람의 아들)’라는 호칭은 구약 성경에서 ‘이 세상의 마지막에 올 심판자’를 가리킨다. ‘메시아’가 초림 예수의 ‘구원자’라는 개념이 들어있다면 ‘인자’는 재림 예수의 ‘심판자’라는 개념이 들어있는데, 한글 번역인 ‘인자’는 그 의미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의 번역이다. 초림의 예수.. 2024. 2. 7.
자기 목숨 -마가복음8장37절(막8:37) [예수어록124] 자기 목숨 -마가복음8장37절(막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막8:37) 예!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 목숨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처럼 받아들여 이 세상을 성과 속으로 나누는 것을 ‘성속이원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금욕주의’로 성스럽게 살라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은 지금 전혀 다른 두 가지 차원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자기 목숨’이란 이 세상에서 ‘장수’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는 생명 즉, ‘구원’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길게 목숨을 이어나가도 결국에는 무(無)로 끝난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목숨은 영원한 유(有)이다. 주님.. 2024. 2. 6.
천하를 얻어도 -마가복음8장36절(막8:36) [예수어록123] 천하를 얻어도 -마가복음8장36절(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6) 예! 그렇습니다. 온 천하를 다 얻었다고 해도 죽어버리면 그게 다 아무 소용이 없으니 천하보다도 목숨이 더 중요합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나라를 영어로 차이나(China)라고 하며, 그 1대 왕을 ‘진나라의 시조 황제’라 해서 ‘진시황’이라 하는 그분은 천하를 다 가지고 거기에 ‘생명’까지 더 가지고 싶어 ‘불로초’를 구하려고 제주도에 부하들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진시황은 자신을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천지와 같은 수명을 가진 신선’이라는 뜻의 ‘진인’이라 자칭했지만 그러나 그도 결국 ‘영생’.. 2024. 2. 5.
목숨 -마가복음8장35절(막8:35) [예수어록122] 목숨 -마가복음8장35절(막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5) 예!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 하나 살고자 하면 잃을 것이지만,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걸면 오히려 살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하셨다.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 것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무슨 일이든 일사각오로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하면 그것은 틀린 해석이고, 죽을 각오로 예수 잘 믿으면 성공한다고 하면 완전히 틀린 해석이다. 생물학적으로 목으로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을 ‘목숨’이라고 한다. ‘숨’을 내 맘대로 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저절로 쉬어지는 .. 2024. 2. 4.
자기 십자가 -마가복음8장34절(막8:34) [예수어록121] 자기 십자가 -마가복음8장34절(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8:34)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마16:24,눅9:23,눅14;27)를 지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다는 뜻이다. 나에게 얘기치 않은 불행이 닥친다 할지라도, 내가 큰 손해를 입을지라도, 내가 억울한 오해를 받을지라도, 내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지라도, 심지어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할지라도 그래도 예수님을.. 2024. 2. 3.
일 -마가복음8장33절(막8:33) [예수어록120] 일 -마가복음8장33절(막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8:33)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한번 슬쩍 보시고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그대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크게 꾸짖으셨다. 하나님의 일이란 사람의 일을 하되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이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하는 모든 이기적인 일은 사람의 일이다. 그 착각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이타적인 일이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 2024. 2. 2.
그리스도시니이다 -마가복음8장29절(막8:29) [예수어록119] 그리스도시니이다 -마가복음8장29절(막8: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8:29) 예! 그렇습니다. 다시 물으시되 “그럼 그대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오?”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그리스도시니이다.” 하이데거는 ‘철학은 사유를 향한 길’이라고 했다. 그 말뜻은 철학이란 어떤 결론이 있는게 아니고 그냥 결론을 찾는 과정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신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신학이란 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예수님이 ‘결론’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라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예수님께서 ‘천국의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었.. 2024. 2. 1.
누구인가? -마가복음8장27절(막8:27) [예수어록118] 누구인가? -마가복음8장27절(막8: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8:27)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 신약성경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쓴 변증이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하는 질문이며 신앙이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그 깊이로 한 발자국씩 들어가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표면적으로 예수는 유대인, 나사렛 사람,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목수이다. 사실 표면적인 예수의 실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바라보.. 2024. 1. 31.
마을에는 -마가복음8장26절(막8:26) [예수어록117] 마을에는 -마가복음8장26절(막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막8:26)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이었던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마을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예수가 그를 고쳐주는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을 구경하거나 뭔가 트집을 잡기 위해서였다. 맹인을 향한 측은지심이 가득했던 예수님과 사람들의 태도는 너무 다르다. 그런 자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이러쿵 저러쿵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를 원치 않으셨던 예수님은 맹인에게 곧장 집으로 가라고 하신다. 맹인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시다. 그 외에 다.. 2024. 1. 30.
무엇이 보이오? -마가복음8장23절(막8:23) [예수어록116] 무엇이 보이오? -마가복음8장23절(막8: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막8:23)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눈먼이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눈에 침을 뱉고 손을 얹으며 “무엇이 보이오?”하고 물으셨습니다. 벳세다 사람들이 맹인을 데리고 왔을 때, 그를 불쌍히 여겨서였을까, 아니면 예수님이 기적 행하시는 것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을까? 예수님께서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으로 봐서 아마도 후자였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다. 아무리 앞이 안 보인다고 해도 남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안수하고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 2024. 1. 29.
깨달음 -마가복음8장21절(막8:21) [예수어록115] 깨달음 -마가복음8장21절(막8: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8:21)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소?”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깨닫기 원하신 것일까? 제자들은 무엇을 깨닫지 못했을까? 깨달음이란 양쪽에서 서로 공명을 일으켜 나는 소리 ‘아하~!’인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차원이 달라 공명이 안되었다. 어느 한쪽이 수준이 안되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계신데 제자들은 계속 눈에 보이는 현상인 열두바구니니 일곱바구니니 하는 대답밖에 못하고 있다. 오늘날도 여전히 사람들은 교회에게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교회들은 엉뚱한 것만 보여주고 .. 2024. 1. 28.
대답 -마가복음8장20절(막8:20) [예수어록114] 대답 -마가복음8장20절(막8: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막8:20)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또 떡 일곱개를 4천명에게 떼어 줄 때는 몇 바구니가 남았었소?” 하고 묻자 “일곱 바구니였습니다.”하고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은 대답 하나는 잘했다. 이미 답이 딱 정해져 있는데 대답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질문을 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고구마를 100개는 드신 표정으로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소?” 하고 가슴을 팡팡 치며 사이다를 찾았지. 그러니까 반복해서 질문을 할 때는 ‘표면적인’ 정답이 아닌 ‘이면적인’ 다른 답이 있는 것이다. 반복해서 질문을 할 때는 나의.. 2024. 1. 27.
질문 - 마가복음8장19절(막8:19) [예수어록113] 질문 - 마가복음8장19절(막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막8:19)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떡 다섯개를 5천 명에게 떼어 줄때 먹고 남은 조각이 얼마나 거두었소?”하고 묻자 “열두바구니였습니다.”하고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질문을 통해서 가르치는 교육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하며 소크라테스가 주로 사용하였고 그 제자 플라톤과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로 사용하였다. 예수님도 산파술을 자주 사용하셨다.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이 원래 알고 있던 지식을 생각해 내도록 하는 것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 답을 끌어내는 질문을 한다. 신앙이란 끝.. 2024. 1. 26.
정신차려 -마가복음8장18절(막8:18) [예수어록112] 정신차려 -마가복음8장18절(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8:18)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대들은 눈은 스티커고 귀는 장난감이오? 까마귀 고기를 먹어서 그렇게 깜빡거리오? 정신 차리시오.”하고 답답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빈들에서 칠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갈릴리의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대선준비위원회까지 꾸렸을 정도다.(요6:15) 그 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배를 타고 곧바로 피해버리셨다. 지금 제자들도 그 엄청난 사건에 눈이 가리워지고 귀가 막혀서 사리분별이 안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돈이 생기면 .. 2024. 1. 25.
둔한 마음 -마가복음8장17절(막8:17) [예수어록111] 둔한 마음 -마가복음8장17절(막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막8:17)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광야에 두고 온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떡을 잊어버렸다고 이 소란이오? 내 말뜻을 못 알아듣겠소? 그렇게도 마음이 둔하오?” 예수님은 계속 십자가와 부활에 관련된 얘기를 하는데 제자들은 아직 깨달음이 없기에 깜빡 잊고 가져오지 못한 떡 문제로 서로 다툰다.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면 모든 상황이 그 생각으로 해석이 된다. 그런 알레고리적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성경의 본 의미가 왜곡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일어난지 2천년도 넘었건만 아직도 .. 2024. 1. 24.
누룩 -마가복음8장15절(막8:15) [예수어록110] 누룩 -마가복음8장15절(막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막8:15)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시기를 “그대들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절대로 조심하시오!” 바리새인(종교)과 헤롯(세상)의 ‘누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보고 느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상 지식’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도 역시 바로 듣고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고,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그들과 우리의 귓구멍과 눈과 마음을 가리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을 수 없도록 왜곡시키는가? ‘호구지책’이라는 누룩이다.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길까 봐 예.. 2024. 1. 23.
있는 것 -마가복음8장5절(막8:5) [예수어록108] 있는 것 -마가복음8장5절(막8: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막8:5)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대들에게 지금 빵이 몇 개 있소?” 하고 묻자 “일곱 개 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빵 일곱 개는 성령의 일곱 은사를 상징한다고 했다. 먼 데서 온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회개한 죄인들에게도 죄로 잃어버린 힘을 하나님 안에서 회복하려면 거룩한 가르침의 양식인 빵이 있어야 한다.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은 말씀이 기갈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는데서 먹을 빵을 새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기적을 베푸셨다. 지금 나에게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다 핑계 대지 말고.. 2024. 1. 21.
굶겨 -마가복음8장3절(막8:3) [예수어록107] 굶겨 -마가복음8장3절(막8: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막8:3)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으니 이대로 굶겨 보냈다가는 그들은 가다가 쓰러질 것이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사람들이 왔다. 그 수가 무려 7천명이나 와서 3일 동안 함께 있었다니 먹고 싸는 문제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군인들은 총탄으로 죽는 비율보다 굶어 죽는 비율이 더 많다고 한다. 그만큼 먹는 문제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아기를 낳지도 결혼도 안하려고 하기에 출산율이 기이할 정도로 떨어져 재난 수준의 인구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의식주.. 2024. 1. 20.
불쌍히-마가복음8장2절(막8:2) [예수어록106] 불쌍히-마가복음8장2절(막8: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막8:2)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사람들과 사흘이나 함께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내 마음이 편하지 않소.”라고 하셨습니다. 칠병이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은 예수님이 군중들을 보고 그들이 배가 고픈 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에게 가장 불쌍한 것은 배고픈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실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 우는 사람이 복이 있다. 세상은 자기가 부자라며 없어도 있는 것.. 2024. 1. 19.
경고 -마가복음7장36절(막7:36) [예수어록105] 경고 -마가복음7장36절(막7: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막7:36)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하고 당부했지만 그러나 소문은 더욱 널리 퍼져갔습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기적을 일으키지만, 세상이 예수님을 ‘기적이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오해할까봐 그것을 소문내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은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시니 정말 놀랍도다”(막7:37)하고 오히려 더 소문을 냈다. 기독교가 ‘기적의 종교’인 것은 맞으나 ‘기적’이 본질은 아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기적’이 일어나야 진짜이고 아무 일도 .. 2024. 1. 18.
에바다 -마가복음7장34절(막7:34) [예수어록104] 에바다 -마가복음7장34절(막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7:34)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며 “에바다(열려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의 군중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자기들 가운데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라기보다 그를 앞세워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보자하며 시험하였다. 예수님은 보기를 원하는 구경꾼들에게는 보게 해 주셨다. 말 한마디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환자의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발라 혀에 대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다. 위무위(爲無爲)이다. 그냥 되는 것인.. 2024. 1. 17.
돌아가라 -마가복음7장29절(막7:29) [예수어록103] 돌아가라 -마가복음7장29절(막7: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막7:29) 예!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그대 말이 맞소. 집에 가 보시오. 귀신이 딸한테서 나갔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알껍데기는 얼마 동안 병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깨어지면 안 된다. 그러나 때가 되면 태어날 생명을 위해서 깨어져야 한다. ‘생각’도 겉껍질이 있어 때가 되면 깨져 사라져야 한다. 오직 유대인들만 ‘선민’이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스러기라도 다른 민족에게 가면 안 된다는 껍질은 예수님으로 인해 깨어졌다. 요즘도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오직 자기들만 ‘구원’받았다는 깨지지 않는 껍질이 있다. 곰 사냥꾼이 곰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곰을 만났..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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