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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8. 교회는 모임이다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8번째 쪽지!□교회는 모임이다1.교회는 성전인가? 아닙니다. 유대교의 ‘성전, 제사장, 희생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다 엎어져버렸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요약하면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 인간이 만든 집일 뿐이다. 그것은 다윗 시대까지 계속되어왔던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방법대로 만들었던 ‘성막’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마가복음14:58절은 “솔로몬성전(헤롯성전)은 손으로 만들었지만 예수님이 일으킬 성전은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이 될 것이다.” 스데반도 사도행전7:48절에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돌이나 콘크리이트를 부어만든 ‘성전’에 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2024. 5. 3.
7797. 교회는 성전인가?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7번째 쪽지!□교회는 성전인가?1.교회는 성전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는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과 ‘교회에 다닌다’는 말은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라고 하는 곳은 ‘건물’입니다. 그런데 정말 교회가 건물인가? 그 교회를 ‘성전(聖殿)’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교회가 ‘성전’인가? 2.한국 교회가 성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제가 교회주보 1천장을 모아서 분석해 보니 교회 표어 중 압도적인 1위가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성전 건축’을 위해서 존재하는군요. 한국 기독교의 돈(헌금)은 ‘성전’ 짓는데 다 들어간다고.. 2024. 5. 2.
7796. 건물 기독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6번째 쪽지!□건물 기독교1.저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찰떡같이 믿고 있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眞如)인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전통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저의 소명을 찾았는데 그것은 ‘문서선교’였습니다. 기독교는 문서의 종교입니다. 성서(聖書 bible)가 바로 문서입니다. 문서선교는 문서를 만드는 일, 문서에 담을 글을 쓰는 일, 문서를 배포하는 일로 나눕니다. 젊었을 때는 주로 문서를 만드는 일을 했고, 기독교 주간 신문사에서 신문 만드는 일을 잠깐 경험 하면서 한국에는 제대로 된 ‘기독교적 글’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알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2.. 2024. 5. 1.
7795. 설교의 미래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5번째 쪽지!□설교의 미래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저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마9:27)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회의 본질은 지켜나가면서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페러다임으로 시도되는 imaginarychurch(개념적교회)입니다. 네트워크화된 전 우주적 교회로서 센터 역할을 하는 아주 작은 상징적인 공간만 있고, 교회 조직도, 건물도,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존재하는 교회입니다. 설교는 어떻게 하느냐? 한 사람이 매주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교파의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매주 섭외하여 매주.. 2024. 4. 29.
7794. 초대교회의 영적 성장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4번째 쪽지!□초대교회의 영적 성장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초대교회 시절에는 어떻게 행해졌을까요? 일단 오늘날과 같은 ‘설교’와 ‘설교자’는 없었고 ‘영적인 인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매주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인도자’들이었습니다.(행3:20, 행5:42, 행9:20, 갈1:16, 골1:27-28)2.만일 설교자가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그 설교한 대로 ‘영적인 세계’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그런 설교는 아무리 많이 하고 많이 들어도 소용없는 공허한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 2024. 4. 27.
7793. 설교의 특권화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3번째 쪽지!□설교의 특권화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여섯째는 설교의 특권화입니다. 루터와 칼빈의 최대 실수는 목사직을 직업화하고 설교를 특권화한 것입니다. 성경을 사제들만 읽고 사제들만 강연했던 가톨릭을 반대해서 종교개혁을 했으면서, 그것이 목사들만 성경을 선포하고, 목사들만 가르치고, 그리고 목사들만 설교한다면 가톨릭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개신교는 ‘공교회’를 목사만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이상한 ‘개교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2.그러다 보니 교회는 담임 목사의 안방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부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합니다. 더 나.. 2024. 4. 26.
7792. 표적을 못 맞추는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2번째 쪽지□표적을 못 맞추는 설교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다섯째는 현대 설교는 완전히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이어서 마치 마른 땅에서 수영 이론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양의 설교가 발사되지만 명중율이 너무 형편없어서 대부분의 설교가 허공으로 바람처럼 날아가 버립니다.2.오늘날 세련된 설교는 ‘지정의’를 자극하여 귀를 즐겁게 하고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의지를 발동시키고 마음에 찡한 감동을 주어서 “아이고,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냥 ‘끝!’입니다. 현대 설교는 청중들의 뒤뇌 앞부분만 겨냥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대뇌는 주어진 정보를 열심히 저장합니다. 그래서.. 2024. 4. 25.
7791. 온전케 하지 못함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1번째 쪽지! □온전케 하지 못함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넷째는 설교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막일꾼으로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4:12) 2.‘성도들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영화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미리 정하시고(예정),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칭의),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영화) 하셨느니라”(롬8:30) ‘온전’이 바로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영화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 2024. 4. 24.
7790. 깨져버린 영적 연합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0번째 쪽지! □깨져버린 영적 연합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셋째는 교인들이 과도하게 또는 병적으로 설교자를 의존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의존할 분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설교자는 ‘설교’라는 무기로 교인들이 자신을 의존하도록(의도적이든 아니든) 그렇게 설교를 합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도록 만드는 순간 그는 사이비 교주로 등극합니다. 2.한국 교회에서는 교회를 운영(?)하는 것을 ‘목양(牧羊) 한다’고 표현합니다. 저는 기도원 집회(목회자 세미나)에서 어떤 강사님이 “양이 하는 일은 오로지 ‘매~~~’하고 울고 풀을 뜯어 먹는 일.. 2024. 4. 23.
7789. 이상한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9번째 쪽지! □이상한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둘째는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설교가 일방적인 선포이기 때문에 회중의 호기심을 약화시키고 회중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강단에서 설교자는 자기도 이해 못한 설교를 하고, 자기도 실천하지 않는 설교를 하고, 자기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고, 자기도 설교 마치는 순간 잊어버리는 설교를 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설교에 기대감이 없고 설교 시간은 엉덩이를 꼬집으며 ‘견뎌내야 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2.교인들은 주일이면 습관적으로 예배당 의자에 소금기둥처럼 앉아서 패턴이 비슷비슷한 한 사.. 2024. 4. 22.
7788. 목적을 잃어버림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8번째 쪽지! □목적을 잃어버림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첫째는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인데 ‘설교’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예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설교’는 회중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원천 차단해 버립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하나님을 만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2.설교자는 열심히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설교하지만, 그것은 이론적이고 학문적이고 논리적인 수사학에 불과할 뿐, 회중을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가서 실제로 하나님의 손을 잡아 만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회중은 .. 2024. 4. 20.
7787. 청교도와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7번째 쪽지! □청교도와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데 청교도운동과 18세기 대각성운동의 양향이 컸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설교는 대부분 ‘청교도 설교’와 대각성운동의 결과인 ‘프런티어 설교’입니다. 2.청교도들은 칼빈에게서 설교 방식을 가져왔습니다. 칼빈은 성경을 조직적으로 강해했는데 그 방법은 교부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르네상스 학자들의 스타일입니다. 르네상스 학자들은 고전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해제하여 ‘주석’을 달았는데 칼빈이 바로 그런 방식의 전문가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성경 본문을 나누고, 더 세분하고, 쪼개서 분석하고 해설을 달았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성경.. 2024. 4. 19.
7786. 소피스트 어거스틴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6번째 쪽지! □소피스트 어거스틴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의 거대한 두 물줄기 중 다른 한 물줄기를 튼 소피스트는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입니다. 그는 전직 수사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강단연설’을 기독교에 ‘강단설교’라는 이름으로 유입시킨 장본인입니다. 2.크리소스톰의 설교 방식은 ‘그리스식’으로 수사학적인 재능과 시구의 인용이 두드러졌고 청중을 감동시키는데 설교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쯔빙그리는 크리소스톰의 설교를 모델로 삼아 개혁교회 설교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3.어거스틴의 설교 방식은 ‘라틴식’으로 그리스 방식보다 더 실제적이었습니다. 설교의 수준을 ‘보통사람’에 맞추고 더 단순.. 2024. 4. 18.
7785. 소피스트 크리소스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5번째 쪽지! □소피스트 크리소스톰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3세기 소피스트들에 의해 그리스,로마식 ‘연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은 그것에 ‘설교 또는 훈계’라는 뜻으로 ‘Homilie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데 그 설교학이 바로 homiletics(설교학)입니다. 그러니까, ‘설교’는 원래 기독교본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로마의 ‘연설’ 방법이 기독교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2.설교는 3-4세기에 살았던 두 명의 위대한 그리스도인 소피스트에 의해 오늘날까지 기독교 안에 두 개의 거대한 강물이 되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2024. 4. 17.
7784. 기독교와 소피스트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4번째 쪽지! □기독교와 소피스트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어떻게 해서 소피스트화 되었을까요? 예수님을 직접 대면했던 사도들과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초기교회 지도자들이 로마의 신앙적 박해를 받으면서 명맥을 유지해오던 교회는 3세기를 전후해서 지체들의 역할이 시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인 부담에 의해서 말씀을 전하러 다녔던 ‘바울’과 같은 전도자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2.이때, 서서히 등장한 것이 ‘성직자 계급’입니다. 초기교회의 여러 모임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교회 의식’이 자리 잡아가게 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층적 구조가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기독교’를 구조화 시켜.. 2024. 4. 16.
7783. 소피스트(sophist)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3번째 쪽지! □소피스트(sophist)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한 소피스트(sophist)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2.그리스(Hellenic Republi)하면 떠오르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유럽 문명, 문화의 시작입니다.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된 헬레니즘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인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철학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기독교는 어거스틴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피타고라스의 수학,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등 웬만한 분야는 지금도 고대 그리스.. 2024. 4. 15.
7782. 설교자의 원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2번째 쪽지 □설교자의 원조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라는 형태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2세기 말 클레멘트라는 사람의 글에 “설교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니 어쩌면 좋을꼬?”라고 한탄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3-4세기 즈음 떠돌이 선생들이라 불리는 소피스트(sophist)들에게 성경이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피스트를 ‘연금술사’라고 번역합니다. 2.소피스트들은 변론을 팔기 위해 외모에 신경을 쓰고, 감정에 호소하고, 재치있는 말을 사용하는 것에 통달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많은 공부를 한 지식인들이었고 유명한 소피스트는 장소를 정해서 같은 청중을 향해 정기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소피스트는.. 2024. 4. 13.
7781. 바울의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1번째 쪽지! □바울의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를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요?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설교가 8편 정도 실려있습니다. 모두 오늘날과 같이 강단에서 기승전결에 맞추어 딱 30분 칼길이로 한 설교가 아니라 길을 가다가, 감옥에 갇히기 직전 자신을 변론하며, 안식일에 회당에서 등등.. 내용과 형식과 길이와 동기와 대상은 다 제각각입니다. 2.바울의 설교는 산발적이었으며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즉석에서 원고 없이 행해진 설교였고 수사학적 구조가 없는 자발적인 설교였습니다. 다른 사도들의 설교도 바울의 설교와 다르지 않았습니다.(행2:14-35, 7:.. 2024. 4. 12.
7780. 신약의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80번째 쪽지! □신약의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를 신약성경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설교 다섯편으로 이루어진 설교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예수님의 설교는 비정기적이고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서도 설교를 하셨고, 길가에서, 회당에서, 심지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드니 호수에 배를 띄워놓고 거기에 올라가서도 하셨고, 들판에서도 하셨습니다. 언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거대한 강단을 만들어 놓고 기필코 강단을 사수(?)해야 된다는 그런 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서든 필요하면 그 자리가 바로 ‘강단’입니다. 3.예수님의 설교는 매우 쉬웠습니다. 예수님의 .. 2024. 4. 11.
7779. 구약의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9번째 쪽지! □구약의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를 구약성경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구약성경의 설교자들은 ‘선지자(예언자)’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었는데 갑자기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선지자는 ‘여자’들도 많았습니다.(삿4:4, 왕하22:14, 느6:14, 눅2:36, 행21:9 ‘여성 목사’를 거부하는 제도는 근본도 없는 아주 비성경적 제도입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처럼 가짜 선지자도 많았으며, 다른 이방 종교의 선지자들도 많았습니다. 2.구약 선지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청중들이 능동적으로 설교에 참여했고 설교가 청중들에 의해 중단되는 .. 2024. 4. 10.
7777. 묶힌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7번째 쪽지! □묶인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넷째, 오늘날의 설교는 구조로 ‘묶여’있습니다. 설교를 하려면 반드시 ‘성경 본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한 구조를 가진 연설 방식을 다듬어서 서론, 3-4개 정도 대지로 나눈 본론, 결론, 적용의 방법으로 설교를 합니다. 설교가 이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런 형태의 ‘설교’라는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역시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Dialegomai’인데(행17:2,행17:17,행18:4,행18:19,행20:7,행20:9,행24:25) 이 단어는 쌍방통행 대화를 의미합니다. 영어의 dial.. 2024. 4. 6.
7776. 막힌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6번째 쪽지! □막힌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셋째, 오늘날의 설교는 청중들에게 ‘막혀’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설교자의 귀가 막혀 있습니다. 설교는 ‘일방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피드백(feedback)이 안 됩니다.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오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는 입에 발린 소리뿐입니다. 이상하게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에 대한 평가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입니다. 2.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경이 말하는 원형에 가까운 설교를 하시는 정아무개 목사님은 예배를 마치고 를 합니다. 설교 시간에 다 못다룬 내용이나, 설교 시간에는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없.. 2024. 4. 5.
7775. 잡힌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5번째 쪽지! □잡힌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둘째, 오늘날의 설교는 사람에게 ‘잡혀’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을 ‘장인(匠人)’이라고 하면서 존경을 보냅니다. 장인은 자기 일에 대해서는 ‘눈 감고도’ 하죠. 일종의 관성(慣性)작용 입니다. 저는 한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평생 목회를 하다가 은퇴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는 생각보다는 그 교회 교인들은 뭔 죄다냐... 어떻게 평생 한 사람의 설교만 듣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아이고, 그 교회 교인들만 불쌍하다. 2.사람에게는 ‘총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총량이 다.. 2024. 4. 4.
7774. 갇힌 설교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4번째 쪽지! □갇힌 설교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를 오늘날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면 첫째, 오늘날의 설교는 형식에 ‘갇혀’있습니다. 딱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규칙대로 합니다. 그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설교는 주일 아침 11시 대예배라고 부르는 시간의 설교입니다. 이 시간의 예배와 설교는 하늘이 두 쪽 나도(?)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 갑자기 교회 문을 닫으라고 하니 평생 11시 예배를 드리던 수많은 목회자들이 맨붕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주일 아침 11시 예배는 불변(不變)이라고 정했나요? 당연히 예수님은 그런 말씀 하신 적 없고 .. 2024. 4. 3.
7773. 성경에 설교가 있나?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그 7773번째 쪽지! □성경에 설교가 있나?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설교가 성경에 있는가? 없습니다. 요즘 성경 프로그램이 얼마나 좋은지 단어를 검색하면 1초만에 다 찾아줍니다. 대다수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이나 ‘개정’성경에서 검색해 보면 ‘설교’라는 단어 자체가 단한번도 안 나옵니다. 2.설교라는 ‘단어’는 안 나오지만 ‘설교하는 것’같은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그런 ‘설교’의 특징은 오늘날 설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설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단들이 잘하는) 억지로 짜맞추기식 주장에 불과합니다. 3.개신교 예배에서는 설교 시간이 예배 시간.. 2024. 4. 2.
7772. 설교권(說敎權)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2번째 쪽지 □설교권(說敎權) 1.저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찰떡같이 믿고 있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眞如)인지, 아니면 사람이 만든 전통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가장 큰 고민은 ‘설교(說敎)’에 대한 글을 쓰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대충 수위를 조절해서 쓰면 되는데 ‘설교’에 대한 글은 쓰면 무조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윌 듀란트라는 신학자는 설교를 가리켜 ‘건드렸다간 큰일나는 개신교의 신성한 소’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한번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제가 좀 소심하니 지적보다는 그냥 참고용으로 읽어보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2.진료는 의사만 해야 한다는 ‘의료법’처럼, 기독교에는 설교는 목사.. 2024. 4. 1.
7771. 영적 성숙이 없는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1번째 쪽지! □영적 성숙이 없는 예배 1.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예배’를 통해서 과연 교인들이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을까? 매주 매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묵묵히 앉아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앞사람 뒤꼭지만 보며 드리는 예배로 어떻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악한 영들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패잔병이 되어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붕대를 감고 앉아서 “우리는 위로가 필요해요... 우리는 치유의 메시지가 필요해요...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 교회에서조차 우리에게 짐을 지우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충전이 필요해요. 우리에게 ‘호~’해 주세요.” 2.넷째, 초대(초기)교회 예배는 오늘날과 같이.. 2024. 3. 29.
7770. 흘러가는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70번째 쪽지! □흘러가는 예배 1.오늘날과 같은 형식주의 기독교 ‘예배’는 부끄러울 정도로 지루하고 그 다양성과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모든 예배 진행 상황이 빤히 예측되고 지나치게 형식적이며 기계적이어서 신선함이나 참신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내용을 대사 몇 마디 바꾸어서 매주 무한 반복하는 ‘개그 프로그램’처럼 재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뇌 구조는 뻔히 예측이 되면 ‘더 들을 것도 없다’하며 수면모드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처음엔 볼펜으로 엉덩이를 찌르면서 졸음을 참느라고 사투를 벌이다가 몇 년 지나면 능숙하게 눈 뜨고 자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설교 시간에 눈은 뜨고 있지만 살짝 밀면 옆으로 넘어갈 사람 의외로 많지요... 2024. 3. 28.
7769. 함께 하는 예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9번째 쪽지! □함께 하는 예배 1.오늘날과 같은 기독교의 ‘예배’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유대인이셨던 예수님도 회당에 가서 유대 회당 제의 방식을 따르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 모임을 ‘교회의 시초’로 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곳을 시나클룸(Cenaculum,식당)이라고 했고, 지금 예루살렘 시온문 밖으로 100m 지점에 약 150명 정도 들어가는 ‘마가의다락방’ 건물이 남아 있는데, 당연히 원래 ‘마가의 다락방’이 아니라 후대에 크게 교회로 지은 건물입니다. 2.예수님도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댓글을 다신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교회 자체가 .. 2024. 3. 27.
7768. 어디에서부터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68번째 쪽지! □어디에서부터 1.오늘날 기독교의 ‘예배’가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약성경에 없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확합니다. 이 말이 모든 기독교 예배를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잘 모르고 위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형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그것은 무효이니 나와 아무 상관 없다”고 하실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저는 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면밀히 연구해서 초대교회(초기교회) 예배가 어떠했는지 알아내어 이 시대에 맞는 예배 순서를 제시할만한 실력은 없습니다. 그것은 전문가들과 신학자들이 할 일입니다. 하지만..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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