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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추구하라 (토저 시리이즈34)

by 최용우1 2024. 4. 11.

성령님을 추구하라 (토저 시리이즈34)

A. W. 토저 지음/이용복 옮김

304p 22000원 규장 2023

책 구입 링크 https://gpf.kr/liRwh

 

1. 중요한 것은 성령님

하나님께 복을 받고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각 개인의 삶에 임하는 성령의 강력한 충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면 내가 주도권을 쥐지 않고 오직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해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옆으로 비켜서고 성령님이 대신 그분의 방법으로 일을 하시도록 내어드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 오직 성령님이 일하신다

영적 사역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얼굴을 바닥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그분의 임재가 경이와 경외의 감정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사역을 떠맡게 되는데, 그 사역은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시작될 수 없는 일들입니다. 

 

3. 신비가들 

옛 교부 시대의 수많은 신비가(神?家 mystic)들은 내면생활의 대가들이었습니다. 신비가들은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알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4.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실 때 언제나 그분의 사람들부터 움직이십니다. 이것은 성경이나 교회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그분의 행동 패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대하7: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그분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굴복하여 하나님의 신뢰를 얻은 사람을 찾으셨을 때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 일의 질(質)은 그 사람의 인간적 능력보다는 그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속량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람은 성령님에 의해 성경에 계시 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6. 의인의 터

다윗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시11:3)고 물었습니다. 현대 복음주의 교회에서 이제까지 파괴되고 무너진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는가? 이것을 알아내서 해결하지 못하면 기독교는 아주 무서운 시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무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7. 쇠약해진 우리의 영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우리의 영혼 안에는 해결되지 못한 ‘영혼의 쇠약함’(시106:13-15)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거의 만족을 모르는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이 있었습니다. 

 

8.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은 온 세상을 둘러보시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세상의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히12:2)를 바라보는 사람을 여기저기에서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9. 성령님의 터 위에

터를 알아야 그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터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님의 터가 아닌 세상의 엔터테이먼트와 최신 유행들을 교회 안에 들여오고 그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성령님을 만나러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오면 재미있는 연예오락이 있고 그것들로 인해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10.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인격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속성들을 갖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대신에 보내실 돕는 자이신 성령이 오시면 또다시 많은 것을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오. 그리고 내가 그대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또다시 일깨워 주실 것이오”(요14:26) 성령님과 인격대 인격으로 만나서 교제해야 합니다.

 

11. 친밀성

성령님께는 인격성, 개체성, 지성(知性), 사랑, 그리고 기억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실 수 있지만, 그것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소외되어 슬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교리적으로 그분을 알고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친밀한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12. 성령님의 주도권

우리는 기도와 순종과 죄의 고백을 통해서 성령님을 내 안에, 우리 가운데 모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주도권을 쥐실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분이 나를 우리를 통제하시면, 생명과 빛과 권능과 승리와 기쁨과 열매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문제들이 풀리고 새로운 차원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3.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

성령님이 어떤 사람의 삶에 계신지 안계신지의 판단 기준은 ‘그 사람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는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교회 안에 계신지 안계신지 판단 기준도 ‘그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영광이 돌아가고 있지 않다면 성령님은 슬퍼하시며 그곳에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14. 다정하신 성령님

성령님은 다정하신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그분께 저항하거나, 그분을 의심하거나, 그분께 죄를 짓거나, 그분께 불순종하거나, 그분께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그분을 못 본 체하거나, 그분을 사랑하지 않거나, 그분께 등을 돌리면 그분은 슬퍼하십니다. 그분은 다정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5.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여러 목소리를 통해 말씀하고 또 말씀하십니다. 양심, 사랑, 이성, 죽음,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온갖 크고 분명하고 특징적인 음성들 중에서 성령님의 음성이 가장 크고 분명합니다. 온 세상 신학자들이 다 달려들어도 설득할 수 없는 자도 성령님은 간단하게 설득하여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게 하십니다.

 

16. 거룩한 증언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신학적 지식에 의해 확증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권능을 주는 것은 우리의 속까지 꿰뚫고 들어오는 성령님의 놀라운 말씀과 임재입니다. 이 거룩한 증언자 보혜사 성령님은 임재하셔서 모든 경우에 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상대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상대하는 것이 됩니다.

 

17. 속지 않으시는 성령님

누구도 성령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설교자도 속을 수 있지만, 성령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눈에 보이지 않게 임재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방 안에 퍼진 강한 향기 같으십니다. 마치 엑스선처럼 막힘없이 어디든지 도달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성령님 앞에서는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습니다.

 

18. 죄의 문제

구원파 계열의 사람들은 “문제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이 좌우되는 것이며, 죄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님이 오셨을 때 누구든지 성령님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19. 구원 얻는 믿음

‘구원 얻는 믿음’이 불가능한 이유는 고백하지 않은 죄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믿음을 갖기 힘든 이유는 죄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마음에 죄를 품고 있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성령님은 마음을 찔러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게 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20. 굳은 마음

성령님이 계속 말씀하시면 그분의 음성에 굴복하여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든지 아니면 귀를 막다가 결국 성령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그것을 ‘굳은 마음’이 되었다고 합니다. 굳어진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양심의 가책을 더이상 느끼지 못하는 ‘화인(火印) 맞은’ 마음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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