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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교부들에게 배우는 기도생활

by 최용우1 2025. 3. 24.

수행-교부들에게 배우는 기도생활 

가브리엘 붕게 (민제영 옮김) 

분도출판사 20,000원  2024.9.5출판

세종도서관 대출 

 

1개인 기도처

교부들은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규칙적으로 외딴 곳(막1:35, 눅5:16)이나 혼자 기도하려고(마14:23,막6:46) 산으로 가신 것처럼 교부들도 대부분 자신의 기도굴이나 기도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끔 제자들과 함께 산에 가셨지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고 먼발치서 예수님을 기다리거나 잠을 잤습니다. 

 

2.동쪽을 향해

교부들은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드리면서 동쪽을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에 천국을 ‘처음’ 창설하셨기 때문입니다.(창2:8) 아담과 하와가 추방되었지만 그럼에도 ‘처음(apxh)’이라는 창조의 원리와 창조의 질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우리가 장차 가게 될 ‘본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하루에 일곱 번 찬양

교부들은 하루에 일곱 번 찬양했습니다.(시119:164) 다윗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드렸고(시119:147) 한밤중에 찬송하러 일어났으며(시119:62) 아침부터 하나님께 청을 올리고(시5:4) 야경꾼보다 먼저 깨어 묵상하며(시119:148) 저녁에도 아침에도 한낮에도(시55:18)간청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일곱번 당신을 찬양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4.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교부들은 일곱 번 ‘시간경’을 드렸습니다. 신심 깊은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관습은 하루에 일곱 번, 일을 하는 사람은 다섯 번, 그리고 누구든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무조건 기도를 했습니다. 때로는 태만이공격했지만, 억지로라도 육체를 굴복시켰습니다. 수도승이 태만에 굴복당한다면 그것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었습니다. 

 

5.깨어 기도했다

교부들은 깨어 기도했습니다. 교부들이 활동했던 당시에는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한 시간 동안 낭송할 수 있는 시편의 구절 수로 시간을 쟀습니다. 그들은 밤에 여섯시간 동안 잠을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났습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시13:3)

 

6.단식(금식)하며 기도

교부들은 단식(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먹보요 술꾼’(마11;19)으로 보였는데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밥 먹기를 좋아하셨지만, 단식(금식)을 해야 할 때는 하셨습니다.(마4장) 에바그리우스는 “단식은 수치스러운 욕망이나 비이성적 분노등 영혼의 정념을 숨기는 영혼의 덮개이다.”라고 했습니다.  

 

7.눈물과 기도

교부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했습니다. 교부들에게 ‘눈물과 기도’는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눈물은 주로 ‘회개와 간구’를 동반합니다. 절망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치유를 애원하고(마9:24), 죄 많은 여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에게 용서를 청합니다.(눅7:38)

 

8.기도의 사람들

교부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끊임없이’라는 권고를 수량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는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교부들은 기도는 다른 활동과 분리된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을 기도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하듯 해 낸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9.화살기도

교부들은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하는 화살기도를 끊임없이 드렸습니다. 이집트 수도승 초기부터 아주 간결하고 짧은 형태의 탄원기도를 마치 창을 던지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드리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이는 시편 저자가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반복해서 하나님께 호소한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0.통성기도

교부들은 “들으소서, 주님, 제가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오늘날 ‘통성기도’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했습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우상들과 달리, ‘가까이 계신 하나님’은 ‘간청하는 나의 소리를 들으신다’(시28:2) 하나님의 인성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현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11.침묵기도

교부들은 ‘침묵으로 기도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마음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악한 영은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나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며, 기도할 때 나를 습격하려는 원수들이 나의 기도의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네 품에 안겨 잠드는 여자에게도 네 입을 조심 하여라.’

 

12.몸의 기도

교부들은 일어나 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육체에 적대적인 그리스도교’는 영성 생활에서 몸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합니다. 동아시아 종교의 몸 기도인 ‘정좌’나 ‘호흡기도’같은 정교한 기도의 방법들을 타 종교의 것이라며 놓치고 있습니다. 교부들은 ‘머리’를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몸으로 기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3.손을 들고 기도

12.교부들은 ‘저의 손 들어 올리니 저녁 제물로 여겨 주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부복을 하고, 손을 들고, 무릎을 꿇는 자세는, 영의 굴복과 겸손, 마음의 따뜻함과 몸의 정화, 영혼의 열정과 성실한 생각을 부여합니다. 초대교회 기도의 기본자세는 손을 깍지끼거나 모으는 것이 아니고 바르게 서서 두 손을 높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14.십자가 기도

교부들은 ‘하늘에 좌정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저의 눈을 듭니다.’하고 십자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손을 양쪽으로 쭉 펴서 몸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123:1-2)

 

15.무릎기도

교부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실 수만 있다면 고통의 잔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실 때 무릎을 꿇고 간구하셨습니다. 누가는 ‘무릎을 꿇고’ 마가는 ‘땅에 엎드려’ 마태는 ‘땅에 얼굴을 대고’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보면 땅바닥에 완전히 부복하게 되기도 합니다. 

 

16.부복기도

교부들은 ‘거룩한 뜰에서 주님께 부복하여 기도’했습니다. 부복의 순서는 무릎과 머리(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십자가 앞에 엎드립니다. 무릎과 손과 이마를 바닥에 대는 ‘큰 부복’과, 오른손만 바닥에 대는 ‘작은 부복’이 있으며 이 동작을 반복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은혜를 구하며 ‘일곱 번’ 땅에 엎드려 부복했습니다. 

 

17.제 십자가를 지고 

교부들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랐습니다. 계시록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계7:3) 천사가 신실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이마에 표시를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 십자가를 제가 져야 한다’는 표현도 ‘십자가 표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긋는 것입니다. 

 

18.기도 골방

교부들은 아버지와 은밀하게 개인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골방’이 있었습니다. 골방은 ‘밀폐된 문 뒤의 방’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워야 하며 가톨릭 성당에는 몇 개씩 기도 골방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화려하고 거대한 성 같은 교회에 ‘기도 골방’이 있는 것을 아직까지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어딘가 있기는 할겁니다.) 

 

19.기도하는 시간

교부들은 ‘기도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시계’를 보고 정확한 시간을 따르지만 시계가 없었던 고대 수도승들은 훨씬 평화로운 자연의 리듬을 따라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에 낮과 밤의 시작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의 양보다 매일 반복하는 ‘규칙성’이 더 중요합니다. 

정리: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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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원제 :  Irdene GefaSSe

 die Praxis des personlichen Gebetes nach der Uberlieferung der heiligen Vate

 

“그리스도인은 오직 기도를 드리면서 참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책은 무수히 많으며, 베네딕도식 기도라든가 이냐시오식 기도 등 위대한 성인들이 가르쳐 준 기도 방법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 온다. 그러나 성서와 교부 전통에 충실하면서 개인 기도를 드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는 책은 흔치 않다. 교부들과 사막의 사부들은 언제 어떻게 기도를 드렸을까? 그들은 어떻게 삶과 기도를 융합했을까?

『수행: 교부들에게 배우는 기도 생활』은 성서와 교부 전통에 따라서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 및 기도하는 방식과 기도하는 자세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일상 속에서 깊은 기도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따라가면서 고대의 기도 방식뿐만 아니라 교부들이 기도와 삶을 결합할 수 있었던 비결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성서와 교부 전통에 따른 그리스도인의 수행

 

이 책은 현대 서구의 ‘증발하는 신앙’에 대한 한 정교회 수도승의 응답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앙이 신앙의 본질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실천되지 않을 때 신앙은 증발한다. 여기서 ‘신앙의 본질과 부합하는 방식’이란 바로 성서와 교부 전승을 따르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책의 원제는 『질그릇: 거룩한 교부들의 전통에 따른 개인 기도의 실천』이다. 저자는 교부들과 사막의 사부들이 기도를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방식으로 기도를 생활화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일상에서 개인 기도를 실천하는 길을 쉽게 설명해 준다. 이 책의 목적은 영적 길을 모색하는 신앙인에게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응답을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성서의 인간과 고대 교부들에게서 ‘그리스도교적 응답’의 핵심을 찾으며, 이에 상응하는 여러 성서 구절과 다양한 교부 문헌을 ‘실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추적한다.

저자는 교부 전승에 따른 개인 기도의 실천을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자 하지 않으며, 이 책이 개인 기도에 관한 실천적 지침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학문적이기만 한 교부학 연구를 경계하며 곳곳에서 실천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교부들을 공부할 때에는 학문적 교부학 연구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된다. 학문적 연구가 공부하는 사람의 삶에 반드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룩한 교부들의 본보기, 그들의 말씀과 행적은 오히려 그들을 모방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하나의 모범이다.”

 

이 책은 네 부분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보고서는 아무도 새 포도주를 원치 않는다?에서는 ‘묵은 포도주’에 해당하는 것, 곧 기도와 관련해 “처음부터 목격하고 말씀의 시종이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전통의 중요성, 영성과 영성 생활, 활동과 관상, 시편 기도와 묵상을 소개한다. 둘째 부분 ?장소와 시간?에서는 개인 기도를 드리기 위해 적합한 장소와 환경 및 기도하는 방향 등을 다루며, 셋째 부분 ?기도하는 방식?에서는 분노나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수행적 방식’의 기도에서 나오는 열매임을 지적하면서 ‘눈물’과 ‘끊임없는 기도’ 등 여러 유형의 수행적 기도 방식을 자세히 설명한다. 넷째 부분 ?기도하는 자세?에서는 몸의 중요성을 환기하면서 일어서서 드리는 기도, 손을 들어 올려서 드리는 기도, 시선을 하늘로 향해 드리는 기도,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서 드리는 기도 등을 소개한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은 ?실천적 조언?은 기도를 드리기에 올바른 장소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 기도를 드리는 시간, 시편 기도, 기도하는 방법과 자세 등을 간략히 요약하면서 일상에서 기도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저자에 따르면 이 모든 수행(실천)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 오는 소중하고 썩지 않는 보물이며,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보화’이다.” 저자는 기도의 방법, 장소, 시간, 자세 등을 설명하면서 한결같이 성서와 전승의 근거도 함께 제시한다. 독자들은 성서와 전통에 기반을 둔 기도, 그리스도교적 수행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덤으로 고대 교부들이 성서를 읽고 실천했던 방식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믿으며, 믿는 대로 기도한다. 올바르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머지않아 올바르게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이 책은 여러 신앙인들의 영적 탐색에 대한 참된 그리스도교적 응답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있다. 특히, 동방과 서방에 공통된 근원적 전통 및 성서에 뿌리박은 ‘실천적 길’을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믿음과 실천이 따로따로 분리되는 상황을 피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내용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15쪽)

 

‘주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 성서의 인간이 하는 기도, 교부들이 신앙 안에서 했던 기도는 어떤 특정 본문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기도하는 방법과 형태와 자세 등도 모두 흡수한다는 뜻이다.  (19쪽)

 

‘프락티케’(실천/수행)와 ‘테오레티케’(이론/관상)는 서로 독립되어 있어서 우리가 개인적 성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길들’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의 길에 있는 두 단계이다. 말하자면, ‘테오리아’(관상)는 ‘실천’의 자연스러운 ‘지평’이다. 곧, 실천은 실천의 목적지, 실천이 지향할 수밖에 없는 관상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영혼을) 인도한다. 실천은 실천의 궁극적 목적지인 관상에서만 그 존재 이유를 얻는다.  (46쪽)

 

거룩한 교부들이 마음에 두고 있는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주일의 의무를 어느 정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동안 날마다 수차례 기도드리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식사와 수면, 숨쉬기 등 삶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규칙적으로 수행하듯이 자신의 신앙을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영적 활동’은 오직 끊임없는 실천(수행)을 통해서만, 방금 언급한 기능들처럼, 자명하게 보이는 자연스러움에 이를 수 있다.  (84쪽)

 

외적인 자세는 내적 태도를 육체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내적 태도에도 직접 영향을 끼친다. 하느님 앞에서 서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그만큼 경외심도 커진다. 서 있으려고 애쓰지 않고 다른 기도 자세들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결코 합당한 열정을 얻지 못할 것이며, 요셉 부스나야가 말한 것처럼 ‘대개 차갑고 얕은’ 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  (167쪽)

 

기도의 ‘실천적 방식’은 우리가 ‘방법’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분리돼서 또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실천적 방식이란 ‘관상적 방식’이 구체화된 형식에 불과한데, 관상적 방식이 없는 ‘문자’는 ‘영’ 이나 ‘의미’를 지닐 수 없고 심지어 존재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천적 방식과 그것의 ‘의미’를 분리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교나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실천적 방식만 따로 떼어서 실행할 수 없다. 외적인 ‘형식’이라는 것은 언제나 본성상 비가시적인 내용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221쪽)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믿으며, 믿는 대로 기도한다. 올바르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머지않아 올바르게 믿지 않게 될 것이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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