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가지 관심사

[911] 사탄에게 절하라, 순식간,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생명을 지키는 일, 가짜 신앙, 허탄한 자랑거리, 생명을 얻는 길, 부끄러움, 물러나는 능력,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신 이유

by 최용우1 2023. 5. 4.

[최용우 원고지 한장 칼럼-만가지 생각]

 

911. 사탄에게 절하라
세 번째 시험은 교회가 세상 정치권력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는 문제이다. 아무보장도 없는 하나님께 무조건 복종하느냐? 사탄과 손을 잡고 권력의 힘을 빌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일을 할 것이냐? 예수 역시 이와 같은 권력의 유혹 앞에서 양자택일의 시험을 받았으나 예수는 단호하게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셨다.

 

912. 순식간
정신을 차리고 나의 사명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사탄의 시험에 순식간에 빠질 수 있다. 대가를 치루지 않고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모두 사탄의 시험이다. 이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대가를 먼저 치루느냐 나중에 치루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오늘도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속일 자를 찾아다닌다.

 

913.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이 제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주장해도 하나님께서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막8:34)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밥벌이’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당연히 목회도 그렇다.
 
914. 생명을 지키는 일
인간은 ‘생존’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힘 있는 인간은 권세와 돈으로 자기 생명을 지키려 하고, 힘없는 인간은 선하게 사는 것으로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지켜낼 만한 능력이 전혀 없다. 무능력한 존재인 인간이 자기의 업적과 성취로 생명을 지키려하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죽는 것이다.

 

915. 가짜 신앙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잃는다’는 말씀을 아주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차원에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서로 경쟁하고, 힘 있는 교회는 힘없고 작은 교회를 무시하고 깔본다.

 

916. 허탄한 자랑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생존을 위협받는 이웃 교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몸집만 키우는 대형교회는 자신들의 커다란 업적을 예수님께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 방식은 구원과 상관없는 제 목숨을 자기가 지키려는 태도일 뿐이다’라며 외면하신다.

 

917. 생명을 얻는 길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막:36-37) 생명은 자기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구름이나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수고이다. 생명을 얻는 방법은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는 방법밖에 없고 그것은 내가 죽어야 가능한 일이다.

 

918. 부끄러움
이 시대의 부끄러움이 무엇인가? 겉으로는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돈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반대로 돈이 많으면 교만하다. 부끄럽게도 이 공식은 교회 안에서도 유효하다. 사람들은 ‘생명’에 속한 평화 기쁨 사랑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렇게 살다가는 결국 큰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 것이다.

 

919. 물러나는 능력
예수께서는 들어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셨다. 천하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아무 때나 나서다가는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다. 또한 평생 명성을 쌓은 사람이 물러나야할 때 아쉬워 못 물러나고 그 명성 다 까먹고 추하게 쫓겨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920.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신 이유
세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로 가신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도 체포될 것이 분명하고 예수님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로 물러가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용우(전재및 재배포 대환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