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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저서

정정당당 잘 살자(햇볕13) 최용우

by 최용우1 2018. 12. 15.

 

 

책 구입 책표지 클릭! 336쪽 12400원 http://goo.gl/W3yds9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이겼다면 너무 자랑스러운 승리입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겼다면 칭찬 받을 만 합니다.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졌다면 아름다운 패배입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웠지만 졌다면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정정당당한 게임은 지든 이기든  모두를 당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겨뤄서 이겼다면 부끄러운 승리입니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싸워 이기면 야유를 받게 됩니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겨뤄서 졌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싸워서 지면 마음에 증오심이 생깁니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게임은 지든 이기든  모두를 망하게 합니다.


프랑스 테니스 선수인 ‘코세’와 미국 선수인 ‘칠덴’이 데이비스컵 대회에서 경기를 할 때의 일입니다.
칠덴 선수의 강렬한 서브가 코세 선수의 그라운드 라인에 아슬아슬하게 맞았고, 심판은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갔다고 판단하고 ‘아웃’을 외쳤습니다.
그러자 코세 선수는 심판에게 걸어가 “이번 서브는 아웃이 아니라 세이프이며 라인안쪽에 떨어졌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공이 떨어진 정확한 지점을 가리켰습니다. 심판은 판정을 정정하여 세이프를 선언하고 상대편 칠덴 선수에게 1점을 주었습니다.
공이 떨어진 지점이 애매하여 만약 코세 선수가 가만있었다면 그냥 자신이 1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애매하게 점수를 얻기보다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점수를 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다음 곧바로 코세 선수가 서브를 했을 때 칠덴 선수는 일부러 공을 받아 라인 밖으로 쳐서 코세 선수에게 1점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1점을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다시 1점을 되돌려준 것입니다.
관중들은 이 멋진 메너의 두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정정당당 잘 살자’로 정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는 특이한 병이 화병(火病)이라고 합니다. 특정 정신적 질환 증세를 일컫는 말이며, 세계정신의학회에서도 화병의 표기를 ‘Hwa-Byung’이라고 합니다. 유사한 병으로 울화병(鬱火病)이 있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억울함’입니다. 억울한 것을 꾹 참고 견디다보니 그것이 안으로 쌓이고 쌓여 병이 된 것입니다.
왜 억울합니까? 정정당당,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특혜와 뇌물과 편법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심판자가 되어야 할 정부마저도 특정한 세력이나 지역이나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대놓고 편파를 저지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힘없고 빽 없고 돈 없어 속 터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입니다.


저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나라의 이러한 불평등과 불공정과 편파성을 극복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공의는 ‘올바르고 공평한 것’, ‘악인을 처벌하고 의로운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는 재판관의 공정한 판결’, ‘하나님이 표준이 되는 바른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기에 이 나라에 ‘공의’를 세울 적임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정당당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추천사>

참다운 용기가 무엇일까?
소유가 많음일까? 힘이 강함일까? 아니면 어떤 일에 잘 나섬일까? 참다운 용기는 지면서 이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교제해 온 저자는 일상적인 평가로 볼 때 결코 소유가 많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항우 같은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열성적으로 투쟁하는 투쟁가도 아니다. 언쟁이나 다툼이 있을 때 자신의 주장을 불처럼 내세워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무리 자신의 의견이 옳아도 언성 높여 주장하는 상대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웃음을 머금고 대화하는 중에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상대가 알게 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이 용기를 표현한 말이 ‘잘’ 일 것이다. ‘정정당당 하게 잘 살자’ 이 책에 담겨있는 주제가 ‘잘’ 사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거슬러 살기를 좋아한다. 세월을 거스르고, 물질을 거스르고, 순리도 거슬러 튀는 삶을 좋아한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스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순리로 살기란 보통의 용기론 힘들다. 그렇기에 순리대로 사는 ‘잘’사는 삶은 용기가 없으면 안 된다. 저자의 삶의 자세와 말과 글을 볼 때 저자야말로 이 용기가 넘치는 사람이 분명하다. 이 진정한 용기의 근원이 어디일까? 기본적으로 저자의 따뜻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저자는 한마디로 따뜻하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기본적으로 포용하고 녹여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따뜻한 성품이 가져온 결과이다. 이 따뜻함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행복하다.
그리고 가볍다.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결코 사상이나 내용 자체가 가볍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간혹 가벼운 주제로 글을 풀어낼 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심오하고 무거운 글감들이다. 그럼에도 결코 무겁지 않게 또 고상한 언어의 유희로 장난하지 않고 진솔하고 담백하며 생활 속에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들로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글을 풀어낸다. 이것은 기본적인 저자의 성품이 따뜻하여 모두를 배려하고 품으려고 하는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따뜻함으로 쓴 글들을 모아 또 한권의 책을 펴낸다. 세상의 많은 책 중의 또 하나의 책이 아닌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따뜻함으로 읽는 이들을 절로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책이다.
책을 사들고 부담을 느낄만한 책이 많지만 이 책은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저자의 삶, 영성, 하나님을 향한 열심 등등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그것도 따뜻하게...
이 멋진 책을 어찌 나만 읽고 끝내겠는가? 힘주어 추천하고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또 하나의 분신을 세상에 내심을 축하드린다.

김종천 목사 (에벤에셀교회 담임)

 

책 구입 책표지 클릭! 336쪽 12400원 http://goo.gl/W3yds9

 

<목차>

1부-정정당당 잘 살자

2부-무한 능력

3부-우리엄마 곰보빵

4부-빛으로 더 가까이

5부-인간의 이해와 존중

6부-스스로 존재하는 신

 

1.잘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졸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릅니다.
마을을 지나고 다리 밑을 지나는 시냇물은 잘잘잘잘 흐릅니다.
강물은 평화롭고 자유롭게 굽이굽이 유유유유유 흐릅니다.
‘잘’ 이라는 말은 시냇물이 흘러가는 모습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시냇물은 중력의 법칙에 의하여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흘러가다 장애물을 만나면 고이고 고여서 장애물을 넘어가거나 옆으로 비켜 돌아갈 지언 정 멈추지는 않습니다.
졸졸졸졸 잘잘잘잘
소외되는 사람 없이 우리 모두 다 잘 먹고 잘 삽시다.
그리고 뭐든 잘 합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쓰러뜨리고 최고가 되는 것은 ‘잘’이 아닙니다.
정정당당 하게 잘!  자 ~ 알 살자. 쪽팔리지 않게 

 

2.나의 신앙고백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나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만사형통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에게는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를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주께서는 내 원수가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내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칩니다.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아멘  (시편1장, 23장)

 

3.사람들이 바라는 것

 

사람들이 별로 없는 외딴 시골에서 목회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말은 “아... 시골 목회는 외로워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친다니까... 한번은 일주일 동안 내가 몇 사람이나 만나는지 헤아려보니 다섯 사람이 안 되더라고요.”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키우는 짐승들 밥 주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그리고 뒷산이나 어슬렁거리는 것이 전부랍니다. 목사님들 모임에 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저 부럽고 빨리 도시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도대체 나는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답답한 생각만 든답니다.
그런데 모임을 마치고 헤어질 때마다 다른 분들이 “나는 시간이 너무 없어요. 그냥 뭐에 꽉 묶여서 질질 끌려 다니며 사는 것 같아요. 목사님의 그 여유로움이 참 부럽습니다.” 하고 말을 한답니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내면적’ 종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겉으로 큰 교회, 많은 성도, 화려한 행사를 하면서 시끌 벅쩍 하더라도 ‘내면’이 채워지지 않으면 허망한 것입니다. 허수아비 같은 것이며 모래성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의 근본은 ‘내면적’ 입니다. 하나님도 영이시고, 성령님도 영이시고, 우리의 영혼도 ‘영’입니다. 영은 눈에 보이지 않은 ‘내면’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이며, 초자연의 세계입니다. ‘내면’이 하나님으로 꽉 꽉 차 있어서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막 흘러나오면, 그곳이 도시든 시골이든 사막이든 장소에 상관없이 천국이 됩니다. 외로울 시간도 없고 사람들을 그리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한 곳에는 저절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기독교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내면적 신앙의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을 갈망하고 있거든요. 갈급한 목을 축여줄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어디든 달려가고 싶거든요.


4.하나님을 만나는 구원

 

사람을 구원한다 함은 그에게 의식(意識)을 공급한다는 말이 아닙니다.그의 욕심을 채워줌으로써 그에게 일시적인 쾌락을 준다는 말도 아닙니다. 사람을 구원한다 함은 그를 그의 하나님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시면 족하겠나이다.” 나는 내 아버지가 나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고, 내 아버지가 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나에게 내 아버지를 보여준 그들이 내 스승이며 은인입니다. <우찌무라 간조>

우찌무라 간조의 글 중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 밑줄 그은 다음 옮겨 적었습니다. 그래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온갖 이벤트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전도 행사’가 아니라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남의 하나님을 믿는지 모릅니다.
나는 내 안에 계신 나의 하나님과 만나고 있는지나 가만히 돌아봅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외면하거나 잃어버리면 언제든 저를 깨우치셔서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5.재미있지요 재미있어요

 

내 눈이 재미있으면 이 세상은 온통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하 - 감나무 위로 날아가던 새가 똥을 찍 갈기고 지나가네요. 오 세상에... 새들은 날아가면서 일을 보는구나. 만약 사람도 걸어 다니면서 일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얼어붙은 길 위를 지나가다가 미끄러워서 한참 동안 안 넘어지려고 자동적으로 춤을 춥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춤을 출줄 아네? 다음에 춤출 일 있으면 ‘빙판길’춤을 한번 춰 봐야겠다고 생각하니 참 재미있습니다.
누가 우리 집 밭에 담배갑 껍데기를 꾸겨서 던져 놓았네요. 저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양심이 니코틴에 쩔은 사람의 얼굴을 담배갑 처럼 팍 찌그러뜨리고 꾸겨 버라는 상상을 발끈! 합니다. 하하 그것도 재미있네요^^
내 눈이 즐거우면,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재미있습니다. 하하 크크크 흐흐흐흐 좋아 왜 이렇게 재미있지?
내가 재미있으면 다른 사람도 재미있게 보이고, 내가 기분 나쁘면 다른 사람도 기분 나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지요?” 하고 묻지만, 내가 재미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어요?” 하고 나도 모르게 묻더라구요.
“재미있지요?”
“재미있어요?” 

 

6.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 (요12:35)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개정)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개역)
어두움 속에 다니는 자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바른)
어둠 가운데 다니는 자는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킹제임스)
어둠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를 가는지를 모른다.(새번역)
어둠 속에서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쉬운)
어둠 속에서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우리말)
어둠속을 걷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현대인)
어둠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가톨릭)
어둠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공동)
어두워지면 길을 찾기에 너무 늦을 것이다.(현대어)
“빛이신 주님! 오늘 우리가 당신을 바라보고 빛을 찾게 해 주십시오.” 

 

7.저놈은 뭘 아는구만

 

중학교 3학년 새학기 첫 수학시간에 다른 학교에서 새로 오신 수학선생님이 긴 막대기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후 갑자기 막대기로 교탁을 탁탁 두드리며 수업시간에 주의해야 할 점들을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남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책상 밑으로 손을 넣어서 냄새나는 것을 만지면 안 된다 알겠나?”
한 친구가 갑자기 그 ‘말씀’을 듣고 “푸하~”하고 웃었습니다. 다들 영문을 모른 채 멀뚱거리는데 선생님께서 “저놈은 뭘 아는구만!” 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그 친구에게 왜 웃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야, 책상 밑으로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는 냄새나는 것이 무엇이겠냐. 남자들 거시기지!”
그때서야 우리는 모두 뒤집어졌습니다.^^
50명이 똑같이 선생님의 한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의 의미를 알고 “빵--” 하고 터진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마도 경험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의 말씀을 직접 알아듣는 작용을 ‘내적 증거’라고 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귀(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도 그 귀를 안 써서 그 기능이 퇴화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알아듣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오! 주님 제 영적 귀를 ‘빵--’ 뚫어 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잘 들리게 도와주시옵소서.

 

8.바쁘니까 기도합니다

 

지난주간은 단양, 안산, 평택, 대전을 다녀왔고 이번 주에는 광주, 서울 다녀와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서 아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바쁘네요.
저는 평소에 운전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날에는 피곤이 몰려와 그냥 뻣어버립니다. 그러니,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당장에 제 마음이 차분하지 못하고 공중에 둥~ 떠 있는 것처럼 불안하였습니다. 마음이 푸석푸석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밤 늦은 시간에 성경을 펼쳤는데 그새 성경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성경과 가까워지기는 어려워도, 성경과 멀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일은 내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과,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식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려 내 마음은 너무나도 삭막한 사막으로 변합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욱 긴장하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9.학교종이 땡땡땡

 

제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배운 동요는 ‘학교종이 땡땡땡’ 입니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들 기다리신다’
학교종이 땡땡땡 치면 그것은 공부를 시작한다는 뜻이니 얼른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러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형, 누나들은 이렇게 부르더군요.
‘학교종이 깨졌다 어서 가보자 선생님이 깨진 종 엿 사 먹는다.’
아마도 형, 누나들은 학교종이 땡땡땡 쳐도 선생님이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학교종이 땡땡땡 치면 얼른 달려가 오히려 선생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나타납니다.
옛날에는 교회에서도 땡 땡 땡 땡 종을 쳤습니다. 그러면 부지런히 교회로 달려갔지요. 그러면 종 치기 훨씬 이전부터 강대상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계시는 목사님의 끄떡끄떡 하는 뒷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에서도 종소리가 들리지 않고, 목사님의 그런 뒷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길러 내는 ‘선생님’ ‘목사님’이 그냥 먹고살기 위한 직업인 ‘선생직’ ‘목사직’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는 스승을 찾아가고, 스승은 제자를 기다립니다. 옛날 서당에서는 언제나 훈장님이 먼저 기다리고 계셨고, 왕이 들어와 자리에 앉아야 신하들이 들어왔습니다. 영화를 보더라도 고수들은 항상 하수들을 먼저 기다립니다.
아마도 우리 가운데 마귀가 살그머니 뿌려놓은 ‘권위의식’이 먼저 기다리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하필이면 ‘권위’와 가장 멀어야 할 ‘선생님, 목사님’ 세계에 뿌려졌을까요잉. 그 개도 안 물어갈 권위의식! 

 

10.병원에 가니


무지 추운 날 어머님을 모시고 대학병원에 정기검진을 하러 갔습니다.
10층도 넘는 건물이 7동이나 있는 커다란 병원의 1층 진료실에는 대학교수님들이 진료를 하는 진료실이 7개 있었고 진료실 앞 게시판에는 진료예약이 된 사람들의 명단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님의 순서를 확인하기 위해 들여다봤더니 15분마다 4-5명 정도가 분단위로 진료예약이 되어 있네요.
진료실 한 곳에서 하루에 100명을 진료한다고 해도 700명입니다. 와- 정말 아픈 사람들이 많네요.
대기실과 진료실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건강 관련 자료들을 읽어보니 그 기준대로라면 우리나라에 환자가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아요. 아주 건강한 저도 몇 가지나 걸리더라니까요. 어머님 모시고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갔다가 내가 환자가 된 듯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져서 왔습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이 “솔직히 말하면 병원에 오는 환자의 80%는 먹는 음식 조절만으로도 병원에 오지 않고 저절로 나을 수 있습니다.” 하고 텔레비전 건강 프로그램에서 하던 강연이 생각나네요.
하나님은 무슨 병이든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우리 몸 안에 만들어 주셨는데, 하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먹는 약은 그 병을 고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른 수많은 면역력들을 동시에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어쨌든 모두들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어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삽시다.

 

11.왜 죄를 짓는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라면서, 왜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일까요? 강제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실 수는 없나요?”

<답>사람들이 죄를 짓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죄를 짓도록 그냥 놔둬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욕심과 탐욕을 부추겨서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하나님 대신 죄가 자리를 잡고 들어앉아 죄를 짓도록 조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들은 그 자유의지를 따라 죄를 짓든지 죄를 멀리하든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강제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신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목적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로마서1:28) 

 

12.잘먹고 잘웃고 잘자나?

 

마더 테레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그 명성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 전에도 찾아오는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데레사가 유명해지고 난 다음에는 주로 유명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한번은 인도 최상급 계급인 브라인 신분이며 정치학 석사학위까지 받은 여자가 데레사를 찾아왔습니다. “수녀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수녀님을 거들고 싶어서 왔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그녀가 누구이며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나요?”
팔과 다리가 잘린 환자들, 피부가 문드러져서 진물이 흐르는 환자들, 손가락 마디가 잘려져 나간 나병환자들을 도우려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자질은 다른 어떤 자격증이나 기술이나 신분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돕는다는 것은 행복의 기운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언제나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는 사람입니다. 마더 테레사는 그걸 알았던 것이지요.
당신은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나요? 

 

13.목표는 오직 주님

 

어떤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마귀에게 빼앗긴 물질을 다 찾아와야 됩니다.’하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먼저 읽었던 책인데 그 구절이 감동이 되었던지 빨간 볼펜으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었습니다.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의 물질을 빼앗아간다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물질을 빼앗아가는 것은 ‘물질’ 자체가 탐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귀의 목적은 ‘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물질을 빼앗긴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평을 하고 타락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물질을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입으로 범죄치 않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변함이 없으며, 흔들리지 않는다면, 마귀도 더 이상 물질을 건들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는 오히려 더 많은 물질을 얻게 하여 그 사람을 ‘재물’로 타락시키려 할 것입니다. 물질이 없어서 타락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물질이 많아서 타락을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돈이 아닙니다.
집도 땅도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주님’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오직 주님께 고정되어 있을 때
마귀는 ‘물질’로 우리를 시험하지 못합니다.
오늘 나에게 물질로 인한 ‘어려움’이 있거나
물질 때문에 ‘마음이 방자해지고 높아져 있다면’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얼른 돌이켜 내 삶의 목표를 꼼꼼하게 재점검해야 합니다.

 

14.행복의 근원지

 

어떤 사람이 집 몇 채를 샀는데 집값이 올라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욕심이 생긴 그는 빌딩을 사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다 판 다음 돈을 은행에 잠시 예금해 두었습니다.
전 재산을 예금해 둔 바로 다음날 그 사람은 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는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뉴스를 보고는 그만 너무 놀라 쓰러져버렸습니다. 만약 은행이 파산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예금했더라도 돌려주는 돈은 5천만원뿐 입니다. 날아가버린 그 많은 돈을 돌려달라고 어디다 억울함을 호소할 데도 없습니다.(며칠 전에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많은 소유’가 우리를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아서 열심히 이것저것 긁어모아 보지만, 나중에는 그 소유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많은 그 어떤 소유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행복의 근원지는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는 심령을 목마르지 않게 적셔주고, 하나님의 말씀의 빵은 우리를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해 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소유’가 넉넉하면 우리는 세상의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게 됩니다. 옛말에 ‘배부르고 등 따시면 장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넉넉하면 장땡입니다.

 

15.공평하다 공평해

 

돈이 없어서 맘껏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비교적 소화력이 좋아서 먹을 기회가 있으면 뭐든 안 가리고 맛있게 잘 먹고 잘 소화시킵니다. 비교적 소박한 음식을 먹고 살지만, 가끔씩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먹습니다.
돈이 많아서 맘껏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소화력이 떨어져서 먹을 기회가 있어도 ‘저것을 내가 소화시킬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비교적 맛있는 것을 먹고 살지만, 가끔씩 소박한 음식을 보고 무슨 ‘밥상의 보화’를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며 먹습니다.
우하하하하 돈 없는 사람은 “이 음식이 얼마나 고칼로리 음식인가?” 하고 살피지만, 돈이 많은 사람은 “이 음식이 얼마나 저칼로리 음식인가?” 하고 살피는 구나!
저는 지금 먹는 것 보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지금 먹는 것 보다 더 살이 안찌는 음식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16.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생명체는 지렁이가 아닐까요? 지렁이는 손도 발도 눈도 코도 입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우동발 처럼 길쭉해서 그리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큰딸 좋은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그린 그림이 ‘지렁이’와 ‘옹골뱅이’(동그라미)였습니다.
지렁이는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입으로 흙을 먹고 흙똥을 쌉니다. 흙에 섞여있는 불순물을 섭취하고 순수한 흙만 배설물(?)로 내놓는다고 하니 지렁이가 많은 땅은 옥토가 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속담은 지렁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하찮은 지렁이도 하나님이 보기 좋게 만든 자연의 한 부분을 깨끗이 정화시키는 청소부로서 사명을 다하며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은 어떻습니까?
말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하지 실제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뜨리는 가장 고약한 피조물이 마귀 다음으로 ‘사람’입니다.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 먹으면서도 가장 더러운 똥을 만드는 인간들은 지렁이를 발로 밟지만 말고 지렁이를 보고 배워야 합니다.

 

17.화려한 십자가

 

미국 유태계 사회학자 아이젠 슈타트가 한국을 방문하던 날 한국 도시의 밤하늘에 가득한 붉은 십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대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충격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왜 한국교회는 경쟁적으로 밤에 십자가 탑에 빨간 네온사인 불을 밝혀서 외국인에게 공포를 일으키게 하는 것일까요?
십자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서양에서는 십자가는 죄인을 사형시키는 사형틀이며 ‘죽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장례식장이나 무덤이나 드랴큘라 같은 귀신을 내쫓는데 필요한 도구로 인식되어 사람들이 기피하는 상징물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형 방법은 나무에 올가미를 걸고 목을 매달아 데롱데롱 공중에 뜨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형틀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서 그것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사형 도구’라는 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죄를 지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이유는 ‘십자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십자가 대신 올가미가 걸린 사형틀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삼는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죄에 대한 섬찟하고 무서운 마음’을 갖지 않을까요?
한국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면 십자가 탑부터 세우는 버릇은 미국의 ‘퓨리탄’(Puritan청교도)이 하던 관습입니다. 그들이 맨 처음 복음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서 십자가 탑을 세운 것은 십자가 탑 자체보다 ‘종’을 매달아 놓을 탑이 필요하여 ‘종탑’을 만들면서 그 위에 십자가를 올린 것인데, 지금은 종은 사라지고 탑만 남았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기 때문에 없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일부러 높은 탑을 만들어서 세우고 그것이 ‘행복의 불빛’이라고 잘 못 광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탑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이상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18.일출사진과 일몰사진

 

컴퓨터 바탕화면 사진을 편집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사진은 해가 막 떠오르는 일출장면과, 해가 막 떨어지는 저녁노을 사진입니다. 두 사진은 거의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출 사진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 들고 하늘이 맑습니다. 주변에 나무도 뚜렷하게 보이고 선명합니다. 일출사진을 찍을 때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해가 바다를 뚫고 올라와 수평선 위에 얹혀지는가 싶은 순간 그냥 공중에 떠올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일몰 사진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 들고 하늘이 검습니다. 주변에 섬이 보이고 어렴풋 어스름합니다. 일몰 사진을 찍을 때는 노출을 생각보다 과감하게 많이 주어야 합니다. 금새 어두워지면서 빛의 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동해이든 서해이든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일출사진은 동해에서 주로 찍고 일몰사진은 서해에서 주로 찍습니다.
동해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사람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고, 서해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사람은 잠시 후에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고 평화롭게 안식하는 시간이 되겠지요?
무심코 보는 사진 한 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의미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무심코 산다

 

동네 입구에서 대전 가는 큰 길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멈추어 서 있었습니다. ‘무심코’ 창밖을 보았더니 신호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다가 신호가 바뀌면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틱! 던져 버리고 간 꽁초가 길에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담배를 피울 정도라면 분명 ‘어른’일 것이고, 차를 운전할 정도라면 분명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바보’는 아닐 것입니다. 길에 담배꽁초를 투척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도덕적 판단 능력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일 텐데 왜 그렇게 몰상식적인 행동을 할까요? 조금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그러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미디어의 발달로 온갖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정보가 많기 때문에 인간의 ‘뇌’가 피로를 느껴 이제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 외에는 자동으로 정보를 차단해 버립니다. 머릿속에는 오늘의 검색어 1위 같은 별로 쓸데도 없는 정보들만 가득 들어 있습니다. 아무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길가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어 그냥 ‘무심코’입니다.
현대인들은 그렇게 집단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 ~ ’한 상태에서 붕 떠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이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하여‘ 생각’할 때 저절로 평온해지고 맑고 투명해집니다.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맑고 투명해지면 고도의 주의력과 순발력과 판단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다들 ‘무심코’ 살지 말고 생각 생각 생각 생각 생각 좀 하고 삽시다.

 

20.하도 기가 막혀서

 

살다 보면 하도 기가 막혀서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지요? 그래서 그래도 기도해야 된다는 생각에 무릎을 꿇기는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로 기도해야 되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정신은 멍 ~  생각은 텅~ 비어비린 듯한 그런 때가 있지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을 팡팡 치며 “애고, 어허... 우째... 허어~”
그럴 때는, 기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애써 말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그냥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내 안에서 성령님께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나보다 더한 애타는 마음으로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해 주시는 성령님의 탄식소리를 들어 보세요. 성령님은 어디 먼 곳에 계셔서 핸드폰처럼 우리의 기도를 중계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 심장에서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내 대신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도 기가 막힐 때는 성령님도 하도 기가 막혀 나와 똑같이 탄식하십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21.사랑받기위해 태어난사람?

 

1.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며,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하나님이 오라 하면 오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는 것은 즉시로 멈출 줄 알며, 오직 하나님만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은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가 기뻐하는 것만 기뻐하며, 자기의 기분이 옳고 그름의 판단 근거이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하며, 자기가 가고 싶으면 가고, 자기가 싫으면 안 가고,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자기부인(Self-denial)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기의 꿈을 이루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할 수 없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서로 상대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고 했지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너 자신을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4.신앙의 기본은 ‘자기를 버리고(내려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고 노래를 부르며 오히려 ‘자기애(自己愛 narcissism)’를 강하게 키워버리니 도대체 나는 언제 죽습니까?

1997년에 이민섭씨가 만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는 초기에 일부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에서만 사용되었으나, 폭발적인 인기로 대한민국 전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가수들이 이 노래로 음반을 냈으며...(위키백과사전)
이것 보세요. 예수님을 모르고 오직 ‘자기애’ 로만 똘똘 뭉쳐진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를 세상 사람들도 따라 부른다고 좋아하지 마세요. 노래를 만든이의 처음 의도와는 상관없이 노래의 성향이 비신앙적인 세상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아버렸다는 뜻이니까요.

5.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자기 자신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22.고백

 

저는 누군가가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하고 말해 주었지만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 책에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며 여러 가지 증거를 대 주었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말을 해 주어서 내 지성이 인지한 하나님을 아는 것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을 느껴보려고 해도 안되더라구요. 어려서부터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며 기독교인 행세를 했어도 그것은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제 나이 20대 초반 어느 해 선원이었던 내가 탄 배는 인도양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스리랑카 해안의 등대가 깜빡깜빡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내릴 듯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갑판으로 나와 하늘을 보며 “하나님... 그래요. 저는 하나님이 믿어져요. 하나님이 나의 창조자이시며 아버지이십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대답이 없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중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 서적을 구입해서 읽고 있었는데, 그 날 제 안에서 너무나도 강력하게 무엇인가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았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 없이 믿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환상을 보았다거나, 신학교에서 배웠다거나, 책에서 읽었다거나, 세례를 받았다거나, 성경이 증언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 안에서 하나님을 믿도록 알려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요일5:10)는 성경말씀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내적 인도함을 받는 사람만이 진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롬8:14)


23.소리를 질러라

 

입으로 하는 기도는 나의 육성을 깨트리는 기도입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를 발성기도라고 합니다.
부흥과 능력과 하늘의 역사는 부르짖으면서 소리쳐 기도할 때 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렘29:12) 부르짖으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어려움에 부딛칠 때마다 부르짖어 하늘 문을 열 수만 있다면 수많은 상담기관이나 세미나나 신앙기법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산모들이 아기를 낳을 때 ‘아?ㅏ아아악... 아아아 악! 남편 이놈....’ 막 소리를 지릅니다. 창피하다고 소리를 지르지 않고 이를 악 물고 참으면 의사가 “그러다가 이 다 나갑니다. 소리를 질러야 쉽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아기가 쑥 나오잖아요.
소리를 질러야 기도응답이 탄생합니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영적인 것이 물질이 되는 과정에서 바로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소리에는 어떤 것을 확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음은 생각을 통해서 움직이고 몸은 소리를 통해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소리가 배에서 나와야 제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소리를 목으로 내는 기도는 별로 힘도 없고 응답도 안 됩니다. 통성기도 할 때 ‘주여 -’ 3창으로 시작하는 것은 일단 목을 툭 트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항문의 괄약근도 꽉 조이고 배꼽에서부터 소리를 끄집어 올리면서 파하! 파하! 어그르르르르 소리가 나도록 끌어올리면 배에서 나는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그동안 기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별로 크고 비밀한 일을 본적이 없다면, 속는 셈 치고 부르짖는 기도를 한번 해 보세요. 여리고성은 소리로 무너졌습니다. 죽은 사람은 소리를 못 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만 소리를 냅니다.


24.눈을 감아라

 

눈으로 하는 기도는 나의 혼을 깨트리는 기도입니다. 눈으로 들어와서 지성으로 이해되는 기도를 ‘머리기도’라고 합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 취급을 당합니다. 그 대부분이 바로 ‘머리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머리기도만 하고 있고, 유창한 말로 청산유수처럼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렌즈로 들어온 그림이 필름에 거꾸로 비추어 찍히듯, 눈으로 어떤 사물을 보면 눈 안의 망막에 거꾸로 상이 찍히고, 그것이 뇌로 전달되어 지성이 정보를 해석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알았다.’또는 ‘이해했다’ 라고 합니다.
기도제목을 번호를 붙여 쭉---- 적어 와서 살짝 실눈 뜨고 보면서 조목조목 아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이해시키려고 작정한 것처럼 온갖 미사여구로 일장연설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설득하는 기도도 응답을 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써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는 것 같은 수준의 기도입니다.
왜 기도를 시작하면 ‘눈을 감’습니까? 그것은 육체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차단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눈을 감고 거기다 말까지 멈추면 마음(생각)의 정보가 올라와 뇌로 전달되어 지성을 자극하기 시작합니다. 올라오는 정도가 아니라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기도가 아니라 공상, 상상, 망상, 허상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지요.
기도를 시작해서 10분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기도를 해 본 분들은 알 거에요. 내 힘으로는 10분 이상 기도할 수 없습니다. 눈을 감되 마음의 눈까지 감아야 비로소 ‘지성’ 뒤에 있는 ‘영성’의 기도가 가능해진답니다. 몇 시간씩 기도하는 기도의 거장들은 대부분 그렇게 영으로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25.숨을 쉬어라

 

기도를 하는데도 단계가 있어요. 셋째는 코로 하는 기도입니다. 코로 하는 기도는 나의 영을 깨우는 기도입니다. 코로 들어와서 심령에 이르는 기도를 ‘마음의 기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바람같이 임하십니다. 사람의 생명은 코에 있고 그 생명이 코에 바람처럼 들숨 날숨해야 삽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다음 마지막으로 그 코에 ‘생명(생기)’을 불어 넣어 일으키셨습니다.
사람의 코에서 ‘바람’이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코는 ‘생명’과 ‘영’이 들락 날락 하는 통로입니다. 즉, 코로 바람이신 하나님의 영을 호흡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를 왜 ‘기도’라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숨을 쉬면 그 바람이 통과하는 목의 숨구멍을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는 기도(숨구멍)이기 때문에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호흡으로 기도하는 방법은 전통적으로 동방 기독교에서 오랫동안 해오는 기도방법인데, 아주 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우리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게 하는 놀라운 기도입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도 ‘열매’가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내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내 안에 게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고 했는데 이 현상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코로 하는 기도는 잠깐만 해도 아주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기도의 ‘방법’은 제가 일부러 언급을 안 했습니다. 가장 차원이 높은 이 기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스스로 찾아보세요)

 

26.세상 요구에 응하지 말라

 

세상의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쾌락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제공하되 쓴맛으로써 하라. 고투로써 하라. 그러면 세상은 우리를 싫어하는 동시에, 마침내 자신을 고치게 되리라.
-우찌무라 간조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매우 이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요구할 뿐입니다. 세상이 원하기 때문에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돕고, 문화센터를 열고, 선행을 행하고,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고, 사회봉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교회가 모두 한다고 해도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교회에게 끊임없이 점점 더 무리한 요구를 해 올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그들의 요구를 채우려 할 뿐 절대로 변화될 생각은 애시당초 없습니다.
세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변화된다는 것을 과거 2000년 인류의 역사가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쓴 약을 주어야 합니다. 저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286.전기가 아까운 사람

 

마더 테레사 수녀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데레사의 세 자매가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 앉아 같은 반 아이들을 헐뜯고 있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꺼버렸습니다.
갑자기 깜깜해진 집안에서 아이들이 소리를 쳤습니다.
“엄마!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어서 불을 켜세요. 아직 저희들의 이야기가 안 끝났단 말이에요”
엄마가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쓸데없이 떠들며 친구들 흉을 보는데 아까운 전기를 쓸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도 쓸데없이 떠들며 남 흉이나 보고 정치인들, 기업인들, 종교인들 비난하면서 아까운 전기를 낭비한 시간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시간을 도적질하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안타까운 줄도 모르고 하룻강아지처럼 날뛰었음을 고백합니다.
부끄럽도다. 부끄럽도다. 아... 부끄럽다.
부디 전기가 아까운 삶을 살지는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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