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9. 종교적 통찰력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579번째 쪽지!
□종교적 통찰력
1.종교적 통찰력이 밝게 비추이는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 계신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종교적 통찰력이 줄어들고 약해진 시대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사학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현란하게 묘사하면서 스스로 예수님을 잘 아는 척합니다.
2.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통찰력이 간절해지면 어느 순간 예수님이 깨달아지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14:8~12)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을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신적 권위’라고 합니다.
3.등산을 하다보면 절마당이나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암자’를 가끔 만납니다. 그러면 저는 안에 있는 스님은 지금 뭘 할까?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저 스님들은 도대체 무엇을 깨닫기 위해서 벽을 보고 앉아 있을까? 그들은 ‘활연관통(豁然貫通)’이라고 하더군요. ‘오랫동안 궁하면 어느 날 확 트여 모든 것을 관통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기독교 신앙도 ‘활연관통’인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에 예수 믿는 것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공부로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느낄 수 없습니다.
4.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과 믿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눅18:15-17) 머리에 지식이 꽉 차 있으면 예수님은 그 지식만큼만 보입니다. 믿음으로 보면 예수님은 ‘무한대’이지만 지식으로 보면 예수님은 ‘쥐꼬리’만 합니다. 만약 오늘날 예수님이 오신다면 틀림없이 지식인들은 다시 한번 그 쥐똥만 한 지식으로 예수님을 죽여버릴 것이 확실합니다. ⓒ최용우
♥2023.7.29. 흙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7월6일신간]<들꽃편지14권 작약꽃호> https://vo.la/bRSd4
♥3<폼나는 주보+파일>220쪽 14000원 https://c11.kr/044yw